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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보다 도깨비 이름을 대문에 붙인 이유는?

2020.01.02 | 조회 1480 | 공감 1

귀신을 쫒는 신, 도깨비 


세계문화탐방 두루가이드 오동석

(cusco_oh@daum.net) 



 조선시대 때 매년 입춘이 되면 경복궁 내에 있는 관상감(천문, 지리, 기상을 기록하던 관청)에서 ‘신도(神茶)’ ‘울루(鬱壘)’ 라는 도깨비 이름을 빨간 글씨로 써서 문설주에 붙였다.


 아래 그림은 퇴계 이황의 종택 대문으로 '신도 울루'를 써서 붙이고, 작은 글씨로 문신호령(門神戶靈), 가금불상(呵禁不祥)을 써서 붙였는데 이는 “신도와 울루라는 대문을 지키는 신과 집의 영이 있으니, 불길한 것을 꾸짖어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퇴계 이황의 종택 대문. 도깨비 이름 신도, 울루라고 써서 안좋은 기운이나 잡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


 아주 오래전부터 도깨비는 귀신을 쫓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대만이나 중국에서도 대문에 신도 울루 그림을 붙여놓기도 한다. 또한 복숭아 나무가 귀신을 쫓아내기 때문에 복숭아 나무에 신도와 울루를 새겨서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그런데 왜 도깨비는 귀신이 무서워하는 신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의 탁록대전에 답이 있다.



(신라시대 도깨비 문고리. 신라 왕실의 별궁이었던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


 

(통일신라시대 때 흔했던 도깨비 기와)



(대만에서 발행한 신도울루 우표)



(복숭아 나무에 새긴 신도울루. 부적처럼 가지고 다녔던 신도울루 명패를 자세히 보면 도깨비가 위에 있고 사각의 판에 신도울루의 모습과 글자를 새겼다.)


“도깨비가 귀신을 물리치게 된 유래와 도깨비의 실체”

 ‘서울의 숲’으로 변한 뚝섬에는 그 유래를 설명하는 표지석이 있다. 뚝섬은 조선시대 때 큰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물길이 생겨서 섬처럼 보였던 곳인데, 뚝섬에는 치우천황 사당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사당을 치웠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며 큰 홍수로 유실 되었다고도 한다. 


 그 후 일제는 치우사당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말을 키우는 장소로 사용했고 얼마 전까지 경마장이 있었다. 


 뚝섬은 본래 둑섬이라 불렸는데, 치우천황 사당에 둑기가 걸려 있어서 둑섬이라 했다. 사당 내부에는 치우천황과 중국의 황제헌원이 10년간 전쟁을 했던 탁록대전 벽화가 있었다고 한다. 

 

 탁록대전은 배달국 14대 자오지 환웅천황(치우천황)과 중국의 시조라 하는 황제헌원이 중국 탁록에서 10년간 73번 전쟁을 했는데 치우천왕이 전승을 했던 대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귀신을 부리는 황제헌원은 귀신부대를 동원했고, 도깨비왕이었던 치우천황은 도깨비 부대를 운영했다. 황제는 곤륜산 근처에서 우연히 백택이라는 동물을 만났는데 호랑이를 잡아먹고 살며 사람의 말을 잘했다. 황제는 그 백택이 알고 있는 귀신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는데 귀신의 종류가 11,500개가 넘었다. 


 치우천황은 이매, 망량, 신도, 울루와 같은 도깨비를 동원했다. 10년간 73번 싸운 탁록전쟁에서 신통한 도깨비들이 항상 귀신들을 이겼기 때문에 도깨비는 귀신을 이기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전통이 도깨비를 부적처럼 여기게 되어서 오늘 날까지 전해진 것이다.


 치우는 청동기 시대에 철제 무기를 발명한 군신이자 전쟁의 신으로 고대세계에서 매우 추앙을 받았다. 


 한서(漢書) 지리지(地里志)에 따르면 치우천황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궐향성에 있으며 높이는 7장이라 한다. 진한(秦漢) 시대의 주민들은 항상 10월에 제사를 지낼 때면 반드시 진홍색 비단 같은 붉은 기운이 뻗쳤다고 한다. 이를 치우기(蚩尤旗)라 불렀다.


 



(2016년 한국조폐공사에서 발행한 치우천황 기념화폐)


 매년 둑섬에서는 군신인 치우천왕에게 국가제례인 둑제(치우제)를 올렸다. 큰 환란이 있을 때는 사당에서 정체모를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한다. 이것을 치우의 깃발, 치우기(蚩尤旗) 또는 둑(纛 :독으로도 읽음)이라 했다. 치우사당에는 소의 꼬리털로 만든 둑기(치우기)가 항상 새워져 있었다. 그래서 둑도, 독도로 불리다 뚝섬이 되었다.


 아래는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화성능행도 8폭 병풍중에 한양으로 내려오는 행렬도의 일부분인데, 행렬 앞쪽에 치우기(둑기)가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전쟁의 신이기 때문에 왕이 행차를 할 때 항상 같이 다녔다.



(정조대왕 화성능행도 8폭병풍 중 한양으로 귀환하는 행렬의 일부분. 붉은 둑기(치우기)가 용 깃발 앞에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도 군신인 치우천황에게 3차례의 둑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거북선의 전면 아래 부분에 도깨비(치우) 형상을 붙여서 왜군의 배와 충돌할 때 충격을 크게 했다. 



 둑신제는 중국의 여러 왕조에서도 행했었다. 한(漢)나라를 새운 유방도 치우천왕을 군신(軍神)으로 받들어 전쟁터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사당에 들러 제를 올렸다.


 몽골의 칭기즈칸도 둑기를 사용했는데 원정을 다니던 칭기즈칸은 이동식 집인 게르 앞에 9개의 둑기를 세웠다고 한다.


 칭기스칸은 자신을 주둑(독)으로 하고 그 밑으로 9개의 부족을 합쳤기 때문에 9개의 둑을 사용했다. 지금도 몽골의 정부청사 앞에는 9개의 기가 걸려 있는데 평시엔 흰색을 사용했으며 전쟁 때는 검은색 기를 사용한다. 



(9개의 둑기. 가운데 큰기는 칭키즈칸의 부족을 상징하며 나머지는 연합한 부족의 둑기이다.)


 도깨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으로 내려오는 동안  궁전이나 국가제례뿐만 아니라 민속에도 꾸준히 등장하는 문화이다. 지역마다 도깨비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고 문화도 다양하다. 


 아래는 황해도에 있는 고구려 안악3호분 무덤의 주인이 들고 있는 부채에 도깨비가 새겨져 있다. 상나라 주나라에서도 도깨비 문양을 새긴 화로를 널리 사용했다.



(도깨비가 그려진 부채를 들고 있는 고구려 안악3호분 무덤 주인. 그림에는 없지만 무덤을 떠받치는 기둥머리도 도깨비로 장식되어 있다.)



(고려 시대 도깨비 모양의 화로. 불을 좋아하고 불을 잘 다루는 도깨비이기 때문에 화로의 모양은 도깨비이다. )



(주나라 도철문 화로)


 도깨비는 동아시아는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네팔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리고 유럽에서도 흔하게 사용했으며 중남미에서도 발견이 된다. 일본 역시 전쟁의 신이 었던 치우천황의 분신인 도깨비를 전쟁의 수호신으로 사용했다.



(일본의 장군의 투구에 올려진 전쟁의 신 치우. 비엔나 무기박물관 소장)




(오스트리아 비엔나 무기박물관에 있는 방패에 6개의 도깨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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